부활(復活)과 성불(成佛)(1)
유지 삼장법사가 떠난 뒤 술렁이던 분위기는 차츰 가라앉았다.
달마는 저녁예불을 마친 다음 평소처럼 천성사 뒷산에 올라가 활공(活功)을 하려고 했다.
석대(石臺)처럼 생긴 바위 위에서 팔다리를 움직이며 준비 동작을 했다.
그 순간 갑자기 뱃속에서 쥐어뜯는 듯한 통증이 일어났다.
달마는 참을 수가 없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달마의 얼굴과 몸에선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이 광경을 옆에서 본 동자승은 크게 놀랐다.
한달음에 절로 뛰어 내려가 이상(異常) 사태를 알렸다.
종정을 비롯한 수많은 스님들이 산으로 올라가 달마를 절 안으로 모셔왔다.
달마가 통증을 느낀다거나 몸져 눕는다는 것은 사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절 안의 대중들은 영문을 몰라했다.
걱정의 심도 또한 깊어만 갔다.
하지만 달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의연한 자세를 견지했다.
달마는 이미 사태의 전말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래 달마의 일과(日課)는 자로 잰 듯 규칙적이었다.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을 몸소 실천해 보였다.
정오(正午)가 지나면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정좌 수행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이 날은 이런 일과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유지 삼장의 갑작스런 방문 때문이었다.
달마를 시봉하는 동자승은 유지 삼장이 선물로 놓고 간 향차를 마치 보물처럼 소중하게 다뤘다. 저녁예불을 마친 뒤 큰스승에게 향차를 정성스럽게 끓여서 바쳤다.
달마는 평소처럼 담담하게 그것을 받아 마셨다.
차 향기가 야릇하고 맛 또한 특이했지만 특별히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러나 그 향차는 고도(高度)로 정제된 독차(毒茶)였다.
달마는 차근차근 속으로 헤아려 보았다.
유지 삼장은 소림사에 있을 때도 다섯 번이나 나를 독살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던가.
그가 다시 독차로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단순한 질투심이나 권위를 지키기 위한 적개심으로 돌릴 수만은 없는 일인 듯싶었다.
달마는 이 땅에서 인연이 다한 것을 절감했다.
그는 유지 삼장이 선물로 준 향차가 예사롭지 않은 조짐이라는 것을 이미 예감했었다.
하지만 달마는 그것을 과감하게 던져 버리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을 의심하기보다는 애써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설령 잘못해서 독차를 마셨다 하더라도 달마에게는 그것을 해독할 수 있는 공력이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서도 해독하려고 하지 않았다.
달마는 눈을 살며시 내려감은 채 과거를 돌이켜 보고, 현재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왜 사랑하는 부모와 정을 끊고 계율이 엄격한 불문(佛門)에 들어와 선법(禪法)의 정상을 추구했는가?
무엇 때문에 편안하고 대우받는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나아가 왕가의 가업을 이으려고 하지 않았는가?
무엇을 위하여 짚신만 신고 운수행각을 했으며 죄악으로 도탄에 빠진 생령들을 제도하려고 했는가?
그리고 이제 독차의 죄악 속에 걸려든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것은 법(法)인가, 성(性)인가? 무(無)인가, 공(空)인가?
뱃속이 뒤틀리는 듯한 통증이 점점 심해졌다.
그러나 달마의 의식은 이미 통증을 벗어나 있었다.
달마의 의식은 마치 거대한 파도에 실린 한 조각 배처럼 멀리 멀리 떠나고 있었다.
그 배엔 자비심이 실려 있었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닻이 올라 있었다.
달마는 해독의 조치를 서둘러 취하지 않은 채 시간이 흐르면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비법도 쓰지 않았다.
그 순간 달마는 진정으로 높은 경지의 깨달음을 얻었다.
달마는 누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천성사의 모든 승려들을 불러모으게 했다.
향탕으로 목욕을 한 다음 가사를 차려 입고 짚신을 신었다.
손에 든 염주를 굴리면서 정좌한 상태에서 조용히 입적했다.
이 때가 바로 위 나라 효장제(孝莊帝) 영안 원년(서기 528년, 단기 2861년) 무신(戊申) 음력 10월 5일이었다.
달마가 10월 상달에 입적한 사실은 선종의 본바탕과도 연관되는 것이라 일컬어진다.
동녘 땅에서 비롯된 하나(一)의 천부진법(天符眞法)을 회귀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온 달마가 바로 10월 상달에 이승을 마감한 것은 시(始)와 종(終)이 하나(一)임을 상징하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천성사의 종정은 곧 바로 사람을 소림사로 보내 혜가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혜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 왔다.
혜가는 생전의 모습 그대로 좌탈(坐脫)한 스승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혜가는 종정을 비롯한 천성사의 승려들과 상의하여 묘지를 고르고 안장 법회를 준비했다.
달마의 묘지는 웅이산(熊耳山)으로 정해졌다.
웅이산은 숭산(崇山) 동남쪽에 위치한다.
등봉현(登封縣), 밀현(密縣), 우현(禹縣)의 세 고을 경계선상에 우뚝 솟은 명산이다.
웅이산의 산봉우리는 해맞이의 모양을 하고 있고, 암석들은 영롱한 빛을 발했다.
그렇기 때문에 천하의 선경(仙境)인 금강산과 비교되기도 했다.
무신 음력 10월 28일 달마의 시신은 웅이산 아래에 안장되었다.
혜가는 스승을 기리기 위해 웅이산 아래의 정림사(定林寺) 안에 7층 불탑을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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