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의 기밀(機密)(1)
이미 150세가 넘은 달마가 나이 어린 종횡을 스승으로 삼고 마주 앉은 모습은 보기에도 딱했다. 하지만 달마는 종횡이 요구하는 대로 구배(九拜)의 큰절까지 올렸다.
격식이 갖추어졌으므로 가르침을 청하는 게 순서였다.
“스승님께 우선 불법(佛法)의 도리(道理)부터 배우고 싶습니다. 분명히 밝혀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종횡은 득의만면(得意滿面)해서 대답했다.
“내가 그대를 제자로 삼기로 한 것은 그대의 얼굴을 중의 얼굴로 보지 않고 부처의 얼굴로 보았기 때문이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밝혀 그대에게 전해 줄 것이오.
나는 일찍이 도문(道門)에 입문하여 도조(道祖)의 도법을 배우고 익혀 왔소.
삼청오행(三淸五行)을 마음과 몸으로 닦아 왔다는 말이오.
그러나 그대는 머리를 깎고 중이 된 처지이니 삼귀오계(三歸五戒)부터 배워야 할 것이오.
내가 전하는 것은 진전(眞傳)이니 잊어서는 안 될 것이오.”
“어찌 스승님의 진전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삼귀오계의 가르침을 반드시 지키고 따르겠나이다.”“좋소. 그러면 우선 삼귀를 받고 다음에 오계를 전수받도록 하시오.
불(佛)에 귀의하면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법(法)에 귀의하면 아귀에 떨어지지 않고, 승(僧)에 귀의하면 윤회에 떨어지지 않으며 법륜(法輪)은 상전(常轉)하는 것이오.
이제 그대는 공삼천(功三千) 과팔백(果八百)이 가득 찬 법을 전수받았소.
그리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하시오.”
하지만 종횡의 자신만만한 언동(言動)에 찬물이라도 끼얹듯 달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자는 이 자리에서 그냥 일어설 수는 없습니다.”
“일어설 수가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종횡은 불쾌하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제자는 스승님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디 자세히 밝혀 가르쳐 주시기 바라나이다.”
“나는 이미 그대에게 분명히 가르침을 주었거늘, 무엇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오?”
“제자는 남천축 고향에 있을 때도 삼보(三寶)에 귀의했었습니다. 한데 스승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과 제자가 배웠던 것은 비록 글자는 같지만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오히려 당혹스럽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대가 고향에서 배운 삼보귀의가 무엇인지 말해 보시오.”
종횡은 인상을 찌푸리며 달마를 쏘아보았다.
그러나 달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설명을 시작했다.
“나의 고향에서는 귀의불(歸依佛)이라고 하면 삼심(三心)을 바로잡고 육욕(六慾)을 깨끗이 쓸어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늘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진성(眞性)을 어지럽히지 않는 것을 귀의불이라고 합니다.”
정곡을 찌르는 달마의 설명에 종횡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법에 귀의한다는 뜻도 그대가 배운 대로 설명해 보시오.”
“그러지요. 예(禮)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행하지도 않으며, 몸으로는 뜻밖의 행동을 하지 않으며, 입으로는 가식이 있는 말을 하지 않아 말마다 도리에 벗어나지 아니 하고, 행동 하나하나가 모범이 되고 모든 이치에 어긋남이 없음으로써 나라의 법에도 저촉되는 일이 없을 것이니, 이것을 귀의법(歸依法)이라고 합니다.”
종횡은 설명을 계속하라는 몸짓을 했다.
“귀의승에 대해서는 일신(一身)을 청정하게 하여 삼계(三界)를 초출(超出)함으로써 법신(法身)이 어느 곳에서 안심입명(安心立命)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어머니 태(胎) 안에 있을 때는 어느 곳에서 안심입명했는가.
그리고 태어날 때는 어디서 와서 죽을 때는 어디로 가는가.
이런 생사의 문호(門戶)와 길을 알고 청정법신이 있는 곳을 분명히 밝혀 내어 항상 자재(自在)하고 멸(滅)하지 않는 것이 귀의승이라고 했습니다.”
말을 마친 달마는 은근히 종횡의 표정을 살폈다.
종횡의 얼굴엔 감격의 파동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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