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방(左旁)과 좌방(左膀)(2)
신광은 마침내 동굴을 찾아들었다. 때마침 달마는 면벽하여 묵연(黙然) 좌선하고 있었다.
신광은 조사의 뒷모습을 향해 하염없이 절을 했다.
신광의 눈에선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눈물이 옷깃을 적시고 땅바닥에까지 흘렀다.
그러나 달마는 목석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달마의 위용은 동굴 안팎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다.
신광은 눈물을 거두고 엎드렸다.
“조사님께 저의 잘못을 비옵니다. 육안범태(肉眼凡胎)인 까닭으로 조사님께서 서쪽에서 오신 연유를 미처 몰라 큰 죄를 지었나이다. 그 죄과는 마땅히 벼락을 맞아도 가벼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조사님께 엎드려 비옵나이다. 자비를 베푸시어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달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신광의 읍소는 다만 동굴에 메아리칠 뿐이었다.
신광은 또 다시 애달프게 소원을 말했다.
“소승은 이 자리에서 죽어도 좋습니다. 조사님, 노여움을 거두시고 마음을 열어 주시옵소서. 제가 육신의 눈을 벗지 못하여 서쪽에서 오신 큰스승님을 몰라뵈었습니다. 조사님, 제발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신광은 사흘 낮 사흘 밤을 빌었다.
그러나 달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때는 12월 9일. 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밤이 깊어지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보통 눈발이 아니었다.
이 고장에선 보기 드물게 큰눈이 내렸다.
신광은 온몸에 눈을 뒤집어썼다.
그런데도 동굴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신광은 마음을 굳게 먹고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날이 밝았다.
눈발이 가늘어지는가 싶더니 매섭게 찬바람이 몰아쳤다.
허리까지 눈에 파묻힌 신광의 모습은 마치 눈사람 같았다.
신광은 울먹이며 말했다.
“옛사람은 도(道)를 구하기 위해서 골수(骨髓) 바치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살을 찔러 피를 뽑아 허기를 덜고, 머리털로 진흙을 닦아 내고, 절벽 밑으로 몸을 던져 호랑이 밥까지 됐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도 옛 사례를 따르고자 합니다. 제가 어찌해야 할지 가르쳐 주시옵소서.”
신광의 눈에선 이미 눈물조차 말라 버렸다.
달마는 비로소 몸을 돌려 신광을 쳐다 보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 눈 속에 앉아 도대체 무엇을 더 구하려 하는가? 그대는 이미 훌륭한 절과 삼장(三藏)의 교전(敎典)을 갖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그대의 변설(辨說)은 누구보다도 뛰어나지 않은가. 그런 그대가 무엇 때문에 이 곳까지 나를 찾아 왔는지 모르겠구나.”
이 말을 들은 신광은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신광은 비참한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고 머리를 눈 속에 비벼대며 호소했다.
“조사님, 부디 자비를 베푸소서. 기왕에 제가 한 말은 모두 잊어 주시옵소서. 진인(眞人)에게서 참을 구하지 않고 어디서 구하라고 하십니까. 비옵나니, 감로(甘露)의 문을 여시고 가르침을 주시옵소서.”
“이 세상에 부처님께서 설한 무상(無常)의 묘법(妙法)만큼 광대하고 정교한 것이 또 있을까. 그것을 얻으려면 행하기 어려운 것도 훌륭히 행하고 참을 수 없는 것도 잘 참아 내야 하는 법. 어찌 소덕(小德)과 소지(小智) 그리고 경심(輕心)과 만심(慢心)으로 그것을 얻으려 하는가. 부질없는 짓 하지 말고 어서 돌아가도록 하라.”
달마의 이 말은 신광에겐 마치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었다.
목이 꽉 막혀 할 말을 잊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읊조렸다.
“조사님, 저의 목숨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원하옵건대 생사(生死)의 길에서 저를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조사님의 심법(心法)이 아니고선 육도(六道)의 윤회를 해탈하여 삼계(三界)를 초월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비를 베푸소서.”
달마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신광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어느덧 달마의 얼굴에선 연민의 빛이 감도는 듯싶었다.
달마는 낭랑한 목소리로 게송을 읊기 시작했다.
“마음으로 청정(淸淨)을 구한다고 청정을 얻을 수는 없느니. 마음의 편안함과 한가로움은 원한다고 얻어지는 것은 아니니, 어리석은 마음으로는 삼계를 벗어날 수 없으리라. 삿된 생각을 갖는다면 반드시 깊은 나락에 빠지리라.”
게송을 들은 신광은 골똘히 생각한 끝에 말했다.
“조사님, 저는 결코 조사님께서 성취하신 바를 구하고자 어리석게 망상(妄想)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저 자신의 성명(性命)조차 알지 못합니다. 고해(苦海)를 벗어나지도 못하고, 지옥으로 이끄는 염군의 손길도 피하지 못합니다. 여태까지 저는 경솔히 조사님의 좌행(坐行)을 방해했습니다. 그것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다만 비옵나니. 자비를 베푸시어 가르침을 주시옵소서.”
달마는 정색을 하고 신광에게 말했다.
“정도(正道)를 얻고자 한다면 좌방(左旁)을 버려야만 하느니라. 홍설(紅雪)이 허리에 차면 그 때 가서 전수하리라.”
신광은 달마의 이 한 마디가 청천벽력처럼 들렸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비장한 각오로 계도(戒刀)를 뽑아 들고 눈 깜짝할 사이에 자기의 좌방(左膀), 곧 왼쪽 팔뚝을 잘라 버렸다.
이것은 달마의 말을 잘못 알아들은 착각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달마가 이야기한 ‘좌방’은 결코 왼쪽 팔뚝을 뜻한 것이 아니었다.
신광의 왼쪽 어깨에선 선혈(鮮血)이 뿜어 내렸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주변에 쌓인 눈은 모두 붉게 물들었다.
처절한 광경 앞에서 달마는 할 말을 잊었다.
달마의 마음이 움직였다.
새삼 신광이 법기(法器)임을 확인하면서 자비의 눈길을 보냈다.
서둘러 자신의 옷을 찢어내어 신광의 상처를 싸매 주었다.
순간 흐르던 피는 멎었다.
신광은 고통스러워 일그러졌던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려 애썼다.
달마는 감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믿었던 대로 이 곳 동쪽 땅의 중생 가운데 그대처럼 신념을 가진 사람을 찾아 기쁘오. 내가 갖고 있는 진전(眞傳)을 그대 말고 누구에게 전하리.”
달마는 그 자리에서 홍세(洪 )의 대원(大願)을 세우라고 신광에게 명했다.
신광은 삼보(三步)를 물러선 다음, 옷매무새를 바로 하고 하늘을 향해 우러러 맹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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