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배우기/▶---세존님 사랑

달마이야기76- 석벽에 인각된 달마(2)

백미 운정 2010. 6. 21. 17:27

석벽에 인각된 달마(2)

 

 

지인은 안심의 숨을 몰아쉬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조사님께서 입정에 드신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렇다면 감히 조사님께 방해가 돼서는 안 될 일이었다.

지인은 조용히 옆에 서서 기다리기로 했다.

한 시간도 넘게 그렇게 기다렸다. 그러나 달마는 여전히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지인은 참다 못 해 몸을 굽혀 절하면서 말했다.

“조사님. 공양 여기에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드시지요.”
석벽에 비춰진 달마의 몸 그림자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순간 지인은 눈을 의심했다.

이것이 어찌 된 일인가?

달마가 앉아 있었던 그 자리에는 아무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지인은 석벽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거기엔 분명 달마의 그림자가 뚜렷하게 박혀 있었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설마 하니 조사님께서 석벽 속으로 융입(融入)되었다는 말인가?

지인은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크게 소리쳤다.

“조사의 온몸이 돌 속에 박혀 있다! 귀신이 곡 할 노릇이로다!”
지인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공양은 그 자리에 놓아둔 채 산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소림사로 돌아온 지인은 곰곰 생각에 생각을 이었다.

드디어 그는 하나의 결론을 이끌어냈다.

달마의 몸이 돌 속으로 들어간 것은 몇 년에 걸친 면벽 좌선의 결과가 분명하다.

이것은 수행이 성공한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제 대승선법의 현묘함을 확실하게 알려주는 계기가 된 셈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무슨 비밀을 지킬 필요가 있겠는가?

지인은 만나는 스님마다 달마 조사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이 소식은 매우 빠르게 소림사 안에 퍼져 나갔다.

그러나 소림사의 승려들은 좀처럼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의심과 호기심으로 다만 이야깃거리로 삼을 뿐이었다.

이들 가운데 몇 사람이 지인에게 직접 동굴에 가서 확인할 것을 요구했다.

지인은 서슴없이 그들을 화룡동굴로 안내했다.

여러 승려들은 동굴 앞에 이르자 앞다투어 화룡굴 안으로 고개를 들이 밀었다.

과연 정면 구석의 석벽에 달마가 좌선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하나의 조각이나 석상처럼 보였다.

승려들의 입에선 절로 탄성이 흘러 나왔다.

승려들의 놀라움은 금방 외경심으로 바뀌었다.

모두가 엎드려 경배했다.

승려들은 그들의 마음과 몸이 신비한 기운에 포용되듯 전율했다.

달마의 몸이 조각처럼 석벽 안에 들어가게 된 연유는 어떻게 된 것일까?

이 이야기는 마치 초능력에 속하는 신화인양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기록에 따르면 그것은 조금도 초능력이 아니다.

달마 스스로가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달마는 여러 해에 걸쳐 면벽 좌선하는 동안 아무도 모르게 돌칼을 연장으로 삼아 석벽에 자기의 그림자를 조각했다고 한다.

면벽할 때와 마찬가지로 조각할 때도 마치 진공(眞功)을 연마하듯 했다.

마음을 닫고 숨을 죽이고 말을 잊고 생각을 끊은 채 오로지 벽을 향해 정신을 집중하여 돌칼을 움직여 나간 것이다.

이 때 석벽에 반영된 달마의 몸 그림자는 좌선 자세의 규범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자 달마의 앉음새와 석벽의 그림자는 하나가 되었다.

사람과 그림자가 털끝 차이도 안 나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지인과 여러 승려들의 말을 전해 들은 주지 혜광은 마음 속으로 크게 놀랐다.

그것은 달마가 이미 성불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혜광은 마음이 급했다.

이미 마음은 대승선법의 현묘함을 믿으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러면서도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고민했다.

달마 조사를 쫓아낸 죄책감에서 좀처럼 벗어나기 어려웠다.

어떻게 해야 사함을 받을 수 있을지 그것도 걱정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죽치고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단단히 각오를 하고 동굴로 향했다.

차라리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조사를 아래로 모셔 소림사에 계시게 하리라고 결심했다.

혜광은 동굴 앞에 당도하자마자 큰절을 하고 엎드려 울먹였다.

“소승 눈이 있어도 조사님을 알아 뫼시지 못하고 큰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달마는 마침 선정에 들어 있었다.

동굴 안은 온통 침묵에 잠겨 있을 뿐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럴수록 혜광의 목소리엔 피가 맺혔고 한탄이 섞였다.

달마는 오래 전부터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지인이 석벽에 조각한 사실을 모른 채 신비화해서 퍼트릴 가능성마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달마는 시기를 보아 지인에게 돌을 새기는 일도 면벽 좌선에 못지않다는 것을 일깨워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미처 그것을 가르쳐 주기도 전에 지인의 우연한 발견이 모든 사태를 급진전시켜 버리고 만 꼴이 되었다.

달마는 이런 일조차 우연 아닌 우연임을 실감했다.

소림사로 돌아갈 때가 무르익은 찰라 그것을 극적으로 꾸민 조화(造化)가 마음에 와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