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실산의 석굴(石窟)(2)
“이 곳에서 중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해도(此地不容僧) 중을 받아들일 곳은 절로 있을 것이다(自有容僧地).”
글을 다 쓰자 붓을 던지고는 근엄한 목소리로 ‘아미타불!’을 외쳤다.
소매바람을 일으키며 방문을 나선 달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문 밖으로 사라졌다.
달마는 소림사를 나서긴 했지만 소실산을 떠날 생각은 없었다.
반야다라 사존(師尊)께서 게송에서 암시하신 땅인데 어찌 섣불리 떠날 수 있겠는가?
그는 산문 밖에 서 있는 두 그루의 계수나무를 다시 한 번 올려다보면서 창성할 창(昌)자를 몇 번이나 입 속에서 되뇌었다.
이 곳이 스승이 지적한 불연의 땅이 맞다면, 반드시 창성할 길을 찾아야 하고 또 창성을 이루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청정한 곳을 찾아야 했다.
그 곳에 머물면서 정신을 집중하여 번뇌를 제거하고 맑은 마음으로 좌선에 임함으로써 선정(禪定)의 법을 세상 사람들이 알아차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첩경이라고 생각했다.
달마는 선정의 법이야말로 성불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어왔다.
달마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6년 고행 끝에 좌선으로 얻은 깨달음의 경지가 무엇인지 분명 알고 있었다.
그의 스승 반야다라는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 좌정하여 새벽녘에 본 명성(明星)의 실상을 달마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 가르침을 일컬어 불립문자(不立文字) 또는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명성, 즉 밝은 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번쩍 하는 ‘깨달음’이다. 머리 속에서 빛나는 별이 보이지 않고서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는 법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一)의 진법(眞法)이 다다르는 최고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진법을 바로 알면 사람의 관념이나 의식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관념이나 의식을 바꾸지 않고는 진법을 배울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달마는 자신의 젊은 날을 회상했다.
애당초 달마 자신도 소승이 아니었던가.
스승을 만나 대승으로 옮겨가 진법을 배운 일이 그야말로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갔다.
달마의 얼굴엔 밝은 미소가 떠올랐다.
혜광을 비롯한 소림사의 승려들이 비록 지금은 소승에 사로잡혀 있지만 일단 고집과 편견의 멍에에서 벗어나 깨닫게 되면 소승을 버리고 대승으로 옮기는 것도 어려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들이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도모하게 되면 나 달마에게 찾아와 법우(法雨), 곧 진리의 비를 걸(乞)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 아니겠는가.
달마는 생각이 이에 미치자 소림사가 마치 자가 품안에 든 듯 마음에 들었다.
반야다라 존자께서 지시하신 불연을 이루어 동쪽 땅에서 진법이 펼쳐진다고 생각하니 절로 마음과 몸에 상쾌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그는 신바람이 난 듯 소실산의 깎아지른 듯한 석벽 사이를 누비면서 바위를 타기 시작했다.
그가 찾는 청정한 터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싶어 쉬지 않고 산을 오르내렸다.
그는 기(旗) 고(鼓) 검(劍) 인(印) 종봉(鍾峰) 등 오대 산봉을 모조리 답사했다.
그동안 무려 수십 개에 이르는 바위굴과 토굴을 찾아냈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가 찾고 있는 터가 아니었다.
단지 비바람만 피할 수 있다든지 아늑하다는 것만으로는 선정의 터전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찾아다닌 지가 벌써 3일이 지났다.
수없이 돌고 돌아도 결과는 여전히 허사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언제나 종착지점은 한 곳이었다.
소림사 뒤쪽 가파른 산등성이에서 발이 멈췄다.
나흘째 되는 날 자시(子時), 달마는 무릎을 꿇은 궤좌의 자세로 좌정에 들었다.
그는 나를 잊은 채 무한의 시공 속으로 빠져들었다.
섬광 같은 빛이 내려꽂혔다.
그 빛을 타고 스승 반야다라 존자가 나타났다.
스승은 혼자가 아니었다.
바로 옆에 신선을 모시고 있었다.
반야다라는 그 신선을 치우천황(蚩尤天皇)이라고 소개하면서 이 분이 득도한 동굴이 바로 산등성이 밑에 있으니 그 곳을 찾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달마는 눈을 번쩍 떴다.
빛은 잔영을 남긴 채 사라졌다.
달마는 빛이 내려꽂혔던 절벽 밑에서 신비한 기운을 느꼈다.
그 곳에서 빛의 여울이 넘실거리는 듯싶었다.
달마는 어둠을 가르고 산등성이를 내려왔다.
몇 개의 바위를 타고 넘으며 서기가 감도는 절벽 밑에 당도했다.
열 길쯤 되어 보이는 깎아지른 듯한 바위는 기이하게도 온갖 나무와 풀로 덮여 있었다.
동굴이란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달마는 동굴이 있으리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의 믿음은 그만치 확고했다.
갑자기 그의 눈앞에 스승과 치우가 한 몸이 된 모습으로 어른거렸다.
그 모습은 뒤덮인 관목을 뚫고 이내 바위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달마는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어 정신 없이 바위 쪽으로 달려갔다.
관목으로 덮여 있는 쪽을 헤쳐보니 과연 동굴이 그 곳에 입을 벌리고 있었다.
동굴에선 따뜻한 기운이 새어나왔다.
마치 신선의 체온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달마는 기뻐서 미칠 것만 같았다.
빠른 손놀림으로 나무를 헤치고 풀을 뽑아 길을 냈다.
그는 동굴 안으로 고개를 내밀면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동굴의 크기는 한 칸 남짓 방만했다.
멀리 동이 트면서 한 줄기 햇빛이 동굴 안으로 스며들었다.
동굴 안은 그 빛으로 환상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어둠으로 감싸인 굴 안은 마치 태초의 혼돈에서 새 생명이 탄생하듯 빛과 어울려 둥실거렸다.
달마는 그 분위기에 휩쓸려 하나가 되었다.
해가 솟아오르자 빛의 각도가 바뀌었다.
굴 안도 그에 따라 조명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 속에 우주의 변화 전체가 깃들여 있는 듯싶었다.
달마는 무의식적으로 손에 든 염주를 굴리기 시작했다.
우주의 순환과 변화를 염주알 속에서 짚어보기라도 하듯 열중했다.
그는 낭랑하게 ‘아미타불’을 연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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