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실산의 석굴(石窟)(1)
당시 중국 땅에서는 대승과 소승의 파벌다툼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비단 중국뿐만 아니었다.
천축에서조차 이런 다툼은 빈번하게 일어났고, 싸움은 점차 격렬한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을 아는 달마는 소림사 주지 혜광이 소승을 고집하고 대승을 거부하는 까닭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는 문득 천축의 대승공종(大乘空宗)의 비조(鼻祖)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생각났다.
용수보살은 기원전 2세기 전후의 인물이다.
천축의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경전을 익혔고, 학문에도 뛰어난 소질을 보였다.
천문지리(天文地理)에서 도위비참(圖緯秘讖), 제가(諸家)의 도술(道術)에 이르기까지 훤히 꿰뚫어 모르는 것이 없었다.
성격까지 호방했던 그는 점차 세상을 깔보기 시작했고, 이는 방탕한 생활로 이어졌다.
그는 벗들과 어울려 주색에 빠져 지냈다.
마침내 왕궁의 궁녀에게까지 손을 뻗친 그와 벗들은 궁녀와 정을 통하다 발각되고 말았다.
두 벗은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그는 간신히 몸을 피해 달아났다.
비싼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그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마음을 굳게 먹은 그는 곧 출가하여 공문(空門)으로 들어가 정진을 거듭했다.
여기에서 그는 일체개공(一切皆空)을 선양하는 수많은 논저(論著)를 저술했다.
어느덧 수많은 승려와 신도들의 존경심이 그의 한 몸에 쏠렸다.
자연스럽게 그는 대승불교의 공종(空宗)을 창립하여 그 시조(始祖)가 되었다.
용수가 말하는 ‘일체개공’은 흔히 ‘공(空)’을 최고로 삼는 사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중론(中論)>이라는 저서에서 “얻는 것도 없으며 이르는 것도 없다. 또한 영원한 것도 없으며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도 없는데, 이것을 이름하여 열반(涅槃)이라고 한다”고 했다.
그는 심지어 ‘열반’조차도 ‘공(空)’이라고 여겼다.
용수의 이러한 ‘일체개공’ 사상은 당시 천축의 소승파 불도들로부터 맹렬한 비난과 반대를 받았다.
“소승파들은, 듣고 나면 마침내 모두가 공(空)인 것 같아 마치 칼로 베인 것처럼 상심했다”고 당시의 기록은 적시하고 있다.
선학(禪學)의 관점에서 볼 때 소승파의 주장은 ‘유(有)’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들은 ‘아공(我空)’을 승인할 뿐 ‘법공(法空)’은 인정하지 않았다.
주체적인 ‘아(我)’만이 ‘공(空)’일 뿐 그 밖의 객체는 모두 ‘유(有)’라는 이야기이다.
용수에 대한 소수파의 반대와 공격은 날이 갈수록 드세졌다.
용수는 어쩔 수 없이 조용한 곳으로 몸을 피해 세상을 등지고 살 수밖에 없었다.
달마는 용수와 자기 신세를 비교하면서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애써 용수보다는 낙관적인 처지에 있다고 자위했다.
달마는 머리 속에 용수의 제자 제바(提婆)를 떠올렸다.
제바도 역시 바라문 출신이었다.
그는 스승 용수와 마찬가지로 많은 책을 읽어 박식했으며 재변(才辯)이 절륜(絶倫)하여 천축에서 그 이름을 떨쳤다.
용수보살이 세상을 떠난 후 그는 대승공종의 후계자가 되었다.
그는 <백론(百論)>이란 저서를 남겼는데 이것은 스승 용수가 지은 <중론>, <십이문론(十二門論)>과 함께 ‘삼론(三論)’으로 꼽힌다. 이 ‘삼론’이야말로 대승공종의 기본 경전이다.
제바의 신행(信行)은 마침내 남천축 왕의 눈에까지 띄게 되었다. 왕은 제바를 불러 들였다.
“그대는 누구인가?”
왕의 물음에 제바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빈승은 일체지인(一切智人)이올시다.”
감히 왕 앞에서 모든 것을 안다고 장담하다니.
남천축 왕은 행여 잘못 듣지나 않았나 싶어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갖가지 일로 시험해 보니 과연 세상사에 모르는 것이 없었다.
왕은 영(令)을 내려 나라 안의 모든 승려를 불러모아 제바와 대론(對論)하게 했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도 적수가 되지 못했다.
모두가 무릎을 꿇고 제바의 제자가 될 처지에 놓였다.
그 가운데는 물론 소승파의 승려들도 들어 있었다.
소승파의 한 제자는 그의 스승이 패했다는 사실에 심한 치욕을 느꼈다.
그는 복수할 마음으로 칼을 갈았다.
제바가 ‘공’이라는 칼로 스승을 곤경에 빠뜨렸으니 자신은 ‘진짜 칼’로 제바를 쓰러뜨리겠다고 다짐했다.
우연히도 제바는 경행(經行)하는 중 그 제자를 만났다.
제자는 비호같이 달려들어 제바의 배를 한칼에 베었다.
피가 터지면서 오장(五臟)이 땅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제바는 오연(悟然)하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내가 전생(前生)에 죽인 것이 바로 너였구나!”
달마는 이런 고사(故事)를 생각할수록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깨달음의 세계를 추구한다는 이들이 서로 파벌을 갈라 싸움을 하고, 게다가 살인까지 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냉랭한 눈으로 혜광을 쏘아보았다.
혜광도 작심한 듯 달마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달마는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붓을 집어들었다.
먹물을 흠뻑 찍어 북쪽 벽 앞으로 다가가더니, 숨도 쉬지 않고 일필휘지로 열 자의 글을 써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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