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산 소림사(嵩山 少林寺)(1)
달마는 숭산이 세 개의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에 ‘번쩍’하는 영감이 스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바로 셋(三)이 하나(一)를 이루는 철리(哲理)를 상징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달마는 일찍이 스승 반야다라 존자로부터 삼일원리(三一原理)의 비법(秘法)을 가르침 받았기 때문에 더욱 감흥이 새로웠다.
숭산은 비단 세 개의 산으로만 이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동쪽과 서쪽에 있는 태실산과 소실산만 해도 기이한 봉우리가 각각 36개나 된다.
36봉(峰)은 하늘의 도수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두 산을 합한 72봉은 중요한 지리적 의미까지 더해 그 기세를 한껏 뿜어냈다.
소실산 기슭에 도착한 달마는 숙연해졌다.
숭산에서의 첫밤을 이 곳 기슭에서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마땅한 자리를 찾기 위해 이곳 저곳을 살폈다.
마침 북쪽 기슭에서 퇴락한 암자를 찾아 냈다.
그는 뚫린 지붕 위로 보이는 별을 이불 삼아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새벽 동이 트기가 무섭게 달마는 산길을 올랐다.
산길은 비록 굽이굽이 굴곡이 심했지만 그다지 험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골짜기마다 우거진 녹음이 기암절벽과 어우러져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런 풍광이 사람을 유혹하며 발길을 붙잡았다.
느릿느릿, 때로는 바위를 타고 때로는 돌계단을 따라서 얼마를 걸었는지 모른다.
어느덧 등줄기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잠깐 쉴 요량으로 주변을 살폈다.
마침 돌로 된 정자가 먼발치에 보였다.
정자를 찾아들었다.
돌 의자가 몇 개 놓여 있었다.
돌 의자에 앉아서 땀을 닦으며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시야가 가려 밑이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하늘에 떠돌던 운해(雲海)가 내려앉는 듯 느껴졌다.
온통 주변이 구름바다에 뒤덮였다.
계곡을 타고 산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쳤다.
산 아래서 피어 오른 안개가 구름과 합쳐져 회오리치는 모양이 예사롭지 않았다.
안개와 구름, 숲과 바위 그리고 사람과 자연이 회오리 속에 모두 하나가 되었다.
달마는 그대로 돌 의자에 앉아서 쉴 수가 없었다.
안개구름을 뚫고 돌 정자를 나섰다.
한 줄기 희미한 빛이 꽂히는 방향으로 찾아 올랐다.
단숨에 십여 리나 올라 온 듯싶었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었다.
아마도 소실산 정상인 듯싶었다.
달마는 장방형(長方形)으로 뻗은 긴 바위 위에 앉아 쉬기로 했다.
구름이 걷힐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구름은 뭉실뭉실할 뿐 좀처럼 걷히지 않았다.
마치 기다리는 사람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 같았다.
달마는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하고 눈을 감았다.
육신의 눈을 감자 온 우주가 내 안에 들어왔다.
우주가 나이고 내가 곧 우주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살며시 눈을 떠 보니 뿌옇던 시야가 조금씩 터지기 시작했다.
달마는 자기가 앉아 있던 긴 바위의 저편 끝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비록 등을 돌린 채 앉아 있었지만 전혀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어쩌면 존재양식(存在樣式)으로서의 인간의 한계를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달마는 입가에 엷은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이런 산꼭대기에서 사람을 만났고 그것도 한동안 함께 앉아 있었다는 것이 못내 즐거웠다.
물끄러미 등줄기에 시선을 보냈다.
그도 무엇인가 느낌이 달랐던 모양이다.
흠칫 놀라면서 뒤돌아보았다.
그는 아직도 어린 티를 못 벗은 동자승이었다.
동자승은 눈을 크게 뜨며 경악하듯 입을 벌렸다.
그도 그럴 것이, 기골이 장대한 이역의 노승이 자기를 쳐다보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동자승은 구천에 있는 신선이 내려온 것으로 믿었다.
벌떡 일어나 달마앞에 엎드렸다.
두 손을 합장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승이 어리석게도 대선(大仙)을 알아뵙지 못했습니다. 용서하소서!”
달마는 어린 스님이 놀라 당황하는 것을 보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내가 그렇게 놀라게 했는가? 이 늙은이는 신선이 아니라 천축에서 온 승려라네. 놀라지 말고 고개를 들게.”
“천축에서 오신 스님이시라고요?”
동자승은 신선이 아니고 천축의 스님이라는 말에 곁눈질을 하면서 반문했다.
과연 코도 있고 눈도 있는 스님의 모습이 뚜렷했다.
단지 피부색이 약간 다르다고 느꼈다.
그제야 동자승은 이마에 나 있는 식은땀을 닦으면서 일어섰다.
그리고 달마에게 읍 하면서 물었다.
“여쭙겠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디서 오셔서 어디로 가시는 길이십니까?”
달마는 귀여워 죽겠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인자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짚신 하나, 탁발 하나로 사해를 돌아다니고 있다네. 소사부께 묻겠는데, 여기가 어딘가?”
동자승은 손을 들어 저쪽 산꼭대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를 보십시오.”
달마는 동자승의 손끝을 따라 눈길을 보냈다.
구름을 뚫고 우뚝 솟은 봉우리 밑에 오래된 절이 보였다.
신기하게도 그 고찰은 대나무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규모도 대단했다.
겹겹이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옛 위세가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고찰로 가는 길목엔 커다란 산문이 세워져 있고 금색으로 죽림사(竹林寺)라고 쓰여진 현판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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