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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이야기61 - 해 떨어지는 낙양(洛陽)(1)

백미 운정 2010. 6. 21. 17:11

해 떨어지는 낙양(洛陽)(1)

 

지극한 간병 덕분에 달마는 곧 건강을 되찾았다.

자광 대사의 안내를 받으며 절 안팎으로 산책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달마는 영령사의 이곳 저곳을 둘러보면서 이 절이 범상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우선 절의 규모가 엄청났다.

광주의 법성사나 금릉의 동태사보다 결코 작지 않은 규모였다.

건축양식도 독특했다.

선정불전(禪庭佛殿)이 아주 빼어났다.

주변의 경관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처럼 구도가 꽉 짜여 있었다.

게다가 영령사에는 자광 대사를 비롯한 여러 고승대덕이 주석하고 있었다.

수많은 승려들이 이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에 열중했다.

달마는 이런 절의 분위기에 마음이 끌렸다.

달마는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광 대사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때로는 밤늦게까지 도담(道談)을 나누었다.

얘기를 나눌수록 자광 대사의 비범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자광 대사야말로 나무랄 데 없는 선학자(禪學者)였다.

이런 느낌을 갖기는 자광 대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달마가 예사로운 인물이 아님을 진작 알아보았다.

애당초 진흙 속에 쓰러져 있는 이역(異域)의 노인을 발견했을 때부터 그의 심장은 가쁘게 뛰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자광 대사는 거의 무아지경에서 달마를 들쳐 업고 영령사로 돌아왔다.

뿐만 아니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레를 간병과 기도로 지샜다.

달마가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의식을 회복해서야 비로소 침소에 들어 눈을 붙였다.

자광 대사는 자리에 누워 왜 이방의 노인에게 그토록 정성을 쏟고 있는지 자문해 보았다.

그것은 단순한 자비심의 발로가 아니었다.

분명 그 이상의 무엇이 있는 듯싶었다.

그는 더 이상 누워 있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한달음에 달마의 처소로 달려갔다.

달마는 깊은 잠 속에 빠져든 것 같았다.

전혀 인기척을 의식하지 못했다.

자광 대사는 여태까지 했던 대로 달마 옆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 달마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비록 여위고 창백했지만 얼굴에선 형언할 수 없는 기풍이 풍겼다.

달마의 숨소리는 들릴 듯 말 듯 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호흡이 고르지 못했다.

빠른가 싶으면 이내 느려지는 등 심한 기복을 나타내고 있었다.

자광 대사는 긴장했다.

달마의 들숨과 날숨을 헤아리며 지켜보았다.

그러나 어느 사이 그의 숨은 달마의 숨에 합치되고 말았다.

그는 이런 사실조차 한참 뒤에야 깨닫고는 크게 놀랐다.

도대체 이 노인에게 무슨 힘이 있기에 숨조차 빨려들게 하는지 의아스러웠다.

숨만 빨려드는 것이 아니었다.

몸과 얼이 모두 빨려드는 느낌이었다.

자광 대사는 달마가 건강을 찾은 뒤에도 곁을 떠나기가 싫었다.

무엇인가 알 수 없는 힘이 그를 붙잡아매는 듯했다.

기회 있을 때마다 그는 달마에게 가르침을 받으려 애썼다.

그러나 달마는 그 때마다 소이부답(笑而不答)으로 응했다.

겨우 알아낸 것이 천축의 28대 조사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 해도 경천동지할 만했다.

자광 대사는 더욱 극진하게 달마를 모셨다.

그는 달마가 이 절에 오래도록 머물게 하기 위해 온갖 정성을 쏟았다.

달마는 모처럼 안정과 평안 속에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하루는 혼자 선방을 나섰다.

절 안에 흐르고 있는 작은 실개천을 따라 거닐었다.

바위틈을 비집고 흐르는 개울소리는 마치 음악소리인양 분위기를 돋우었다.

물소리와 하나가 되어 흐르듯 걷듯 하며 한참을 내려갔다.

드디어 조그만 연못에 이르렀다.

개울은 그 곳에서 모든 소리를 멈추었다.

연못은 고요 그 자체였고 맑기가 거울 같았다.

달마는 연못 속에 드리운 자기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연못 속에 있는 자기와 연못가에 있는 자기가 둘 아닌 하나라는 사실을 새삼 되새겼다.

문득 연못에 비친 자기 모습 뒤로 커다란 불탑(佛塔)이 투영되었다.

달마는 몸을 돌려 산등성이를 올려다보았다.

구층탑이 우뚝 솟아 있었다.

달마는 여러 번 연못 주변을 산책했었지만 산등성이에는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곳에 불탑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긴 그 동안의 산책은 늘 자광 대사와 함께였다.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고, 이야기에 팔리다 보면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별로 없었다.

달마는 새로운 발견이라도 한 듯 산등성이를 향해 올라갔다.

가까이서 본 구층탑의 규모는 엄청났다.

안에서 예불을 볼 수 있을 만큼 큰 규모였다.

구층까지 층계가 놓여 있고 층마다 불상이 조성되어 있었다.

탑 앞에 서자 달마는 솟구쳐 오르는 희열을 느꼈다.

서둘러 탑의 계단을 밟았다.

숨 돌릴 사이도 없이 단숨에 구층까지 올라갔다.

난간을 잡고 밖을 내다보았다.

구름과 안개가 산 아래에 깔려 있고 멀리 낙양성 전체가 한 눈에 들어왔다.

구층탑은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선경(仙境)인 듯 느껴졌다.

구층탑 안팎의 조각은 거의 신기(神技)의 조화인 듯했다.

달마의 입에선 절로 탄성이 흘러 나왔다.

“불가시의한 일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