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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이야기86 - 독부양녀(毒婦楊女)(2)

백미 운정 2010. 6. 21. 17:48

독부양녀(毒婦楊女)(2)

 

 

 

비록 달마 조사로부터 확실한 언질은 없었지만 연지는 스스로 법을 이어받은 것으로 착각했다.

그녀의 착각은 급기야 엉뚱한 상상으로 번져 갔다.

연지는 전법과 관련한 고사(故事)가 머리에 떠올랐다.

명사(明師)로부터 심인(心印)을 받은 제자는 스승을 이어 그 지위에 오른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달마의 실질적인 후계자가 된 것으로 자부한 양연지는 날이 갈수록 마음 속에 교만심이 싹텄다. 이미 법을 전해 받은 이상 달마를 만나는 것조차 번거롭고 귀찮았다.

만약 달마만 없다면 자기의 존재를 천하에 과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심지어는 양 나라의 무제와 향산사의 신광 대사도 자기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되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 아니겠는가.

양연지는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달마가 자기 집에 머물고 있는 한 그런 날이 쉽사리 올 것 같지가 않았다.

게다가 달마는 좀처럼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연지는 조급한 마음에 마침내 달마를 없애려는 계책을 세우기로 했다.

소리 소문 없이 달마를 제거하는 최상책은 독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회를 엿보았다.

달마는 이미 오래 전부터 연지가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직감으로 알아 차렸다.

하지만 짐짓 모르는 척하고 그녀의 음모에 걸려들었다.

연지는 날을 골라 찻잔 속에 독을 넣어 달마에게 바쳤다.

그것을 받아 마신 달마는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숨을 거뒀다.

전기(傳記)에 따르면 이때 죽은 것은 달마의 화신(化身)이라고 한다.

달마는 짚신 한 짝을 벗어 화신을 만들고 본신(本身)은 감추었다는 이야기다.

이런 사연을 전혀 모르는 양연지는 달마의 장례식을 치르고 동록관의 교외에 매장했다.

속으로는 기뻐하면서도 남들 앞에서는 대성통곡했다.

세상에 스승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연기를 그럴듯하게 꾸며 댄 셈이다.

달마는 그야말로 통탄을 금할 수 없었다.

동록관을 벗어난 다음 터벅터벅 걸으면서 시 한 수로 속마음을 드러냈다.

“여인이여, 그대를 위해 슬퍼하노라.

너무나 미매하여 자성마저 어둡구나.

기왕에 마음을 돌이켜 재계를 하였다지만

미처 삶과 죽음조차 규명하지 못했구나.

오루체로는 죄과가 크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에

전생에 지은 죄가 너무나 미매하여 수행을 알지 못하는구나.

여인의 몸으로 태어나 불편도 많고 험난이 거듭되니

삼종(三從)과 사덕(四德)으로 타인의 명을 좇아야 하네.

양연지, 나를 만난 것은 삼세(三世)의 행운이거늘

진정으로 하나로 관통하는 불이(不二)의 법문을 구하지 않는구나.

여인이여, 비록 말은 잘 하지만 마음이 바르지 않으니

어찌 가벼이 무자(無字)의 진경(眞經)을 전하리오.

겨우 선기(禪機)의 말 몇 가지를 듣고 우쭐하여

나를 독살하고 뭇 사람의 스승이 되고자 꾀하는구나.

이로 미루어 내가 온 길은 비록 한 줄기였지만

내가 떠난 뒤 그 길이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릴 것이 두렵구나.

내가 해야 할 일은 신심 있는 사람을 찾아 도통을 바르게 전하는 것이라.

혜안으로 사부주(四部洲)를 살펴보니 한 사람도 없구나.

다만 있다면 신광뿐이니 그를 제도하지 못하면

동토에 온 보람을 어디에서 찾으리….”

달마는 신광에 대한 생각이 새삼스럽게 간절했다.

림사에 주석하고서도 신광과 재회(再會)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달마를 떠나 보낸 뒤 신광은 이상하게도 허전한 마음이 앞섰다.

달마의 모습과 목소리가 마음 속에서 회돌이 쳤다.

신광은 그럴수록 달마를 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애를 쓸수록 달마의 존재는 그의 마음 속에서 더욱 커져갈 뿐이었다.

신광은 중병이라도 든 듯 신음하기까지 했다.

하루는 꿈 속에서 명부(冥府)의 사자를 만났다.

마침 신광이 법단에 올라 설법을 하려는데 열 사람의 사자가 막아서는 것이었다.

신광은 단에 오르지 못한 채 열 사람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어디서 왔소. 나의 설법을 들으려면 길을 비키시오.”

열 사람의 사자들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들은 유명지옥(幽冥地獄)의 십전염군(十殿閻君)이오. 당신의 법문을 들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 당신의 수명이 다하였기에 온 것이오. 당신의 생혼(生魂)을 올가미에 씌워 지옥으로 갈 것이니 따라오시오.”

신광은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른 채 기절초풍할 지경이 되었다.

“나는 그 동안 49년간이나 설법으로 중생을 제도해 왔소. 그 동안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노력했기에 무량(無量)의 공덕을 쌓았으리라고 믿고 있소. 그런데도 염군의 손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진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아무리 법을 설하고 경전을 강론하더라도 우리의 손길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오.”

“그렇다면 우리 불문에서는 아무도 피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오?”

“그렇지는 않소. 단 한 사람만은 우리도 어쩔 수 없소.”

“그 사람이 누구요, 가르쳐 줄 수 있겠소?”

“그 사람은 당신도 만난 일이 있을 것이오. 얼마전 이 곳에 왔던 달마대사라는, 얼굴이 까맣게 생긴 화상이 바로 그 사람이오.”

이 말을 들은 신광은 너무나 놀라 식은땀을 흘렸다.

그런 훌륭한 스승을 박대하다 못해 쇠염주로 내리치기까지 했으니 될 말이 아니었다.

우선 염군에게 달마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