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新光)대사(1)
겨울이 오고 여름이 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또 일 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날도 해는 어김없이 서산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달마는 석굴에서 면벽좌선을 끝내고 평소대로 굴 밖으로 나왔다.
잠시 권법연습을 했다.
달마가 연습한 권법은 이른바 소림무술의 원류(原流)를 이루는 것이다.
달마는 소림사에 있는 동안 독특한 심의권(心意拳)을 가르쳤다.
이것은 발타 대사가 펼친 천축의 무공에 의성(醫聖) 화타(華陀)가 창안한 오금희(五禽戱)의 도인법(導引法)을 가미해서 개발한 것이라고 일컬어진다.
심의권의 특징은 주먹 쓰기보다 마음 쓰기가 우선한다는 데 있다.
진정한 힘은 마음에서 오는 것이라는 게 심의권의 요체이다.
심의권의 기본은 달마가 저술한 관심론(觀心論)과 역근경(易筋經), 세수경(洗髓經)에 자세히 쓰여 있다.
물론 세수경과 관련해서는 그 내용의 전모가 전해져 내려오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청나라 때 출간된 ‘세수경부역근경(洗髓經付易筋經)’이란 책을 보면 그 대강을 알 수 있다.
달마는 권법연마에 이어 경공(輕功)을 연습했다.
절벽을 평지처럼 달리는가 싶더니 나무 사이를 새처럼 날았다.
달마가 일찍이 양자강 물 위를 걸어서 도강한 것도 물론 경공을 펼쳤기 때문이다.
거의 한 시간 가량 연습에 몰두하고 나자 달마의 온몸은 마치 비에 젖은 것처럼 땀으로 흥건했다. 달마는 동굴 위로 뛰어올라 먼 하늘을 바라보면서 휴식을 취했다.
하늘 끝에 매달린 그윽하고 우아한 저녁노을이 달마를 감싸안았다.
석양이 산 아래로 침몰한 뒤에도 여전히 달마의 몸에선 노을빛이 은은하게 발산되었다.
옛말에, 명산(名山)이란 그 높이 때문에 붙여진 것이 아니라고 했다.
신선이나 참도인이 머무는 곳이 명산이라는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물도 그 깊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용이 있으면 곧 신령한 곳이라고 일컬어진다.
이 화룡동굴 역시 달마가 면벽좌선함으로써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달마가 옛 인연을 좇아 찾은 것이 바로 이곳 치우동굴이지만 사람들은 고사(故事)는 까마득하게 잊은 채 사람들은 달마의 존재 자체만을 입에 올렸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달마동굴’이라고 고쳐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 당시의 상황이었다.
달마는 산천이 어둠에 파묻히는 경관을 하염없이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엔 어둠과 경치의 조화조차도 하나의 아름다움으로 비쳐졌다.
그는 이곳이 선종을 번창시킬 땅이 되기에 손상에 없다는 것을 새삼 확신해 마지않았다.
하지만 웬일인지 달마의 입에선 한탄의 신음소리가 간단없이 흘러 나왔다.
왜 그랬을까?
거기엔 분명 까닭이 있었다.
달마는 스스로 이미 황혼에 접어들었음을 느끼고 있었다.
비록 수행은 원만에 도달했지만 머지않아 원적(圓寂)하는 그 날이 올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조사의 조위(祖位)를 계승하게 하여 선종의 정법을 널리 펴게 할 것인가?
달마에게 있어서 이것은 이승에 있어서의 마지막 과제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제대로 법을 전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구법하는 자가 가르침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구법만으로 전법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이래 전법이 오직 한 사람에게만 이루어진 것은 그것을 말해 준다.
심지어는 선(禪)이라는 글자만 하더라도 단(單)한 사람에게만 보여주는 것(示)이라는 함의(含意)를 지닌다고 일컬어지고 있을 정도다.
물론 선이란 선나(禪那)의 준말로 천축말인 범어의 ‘디야(dhyana)’의 음역이지만 한자의 뜻풀이가 정곡을 찌르고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한 사람에게만 법을 전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방법론으로 보면 거기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많은 제자 가운데서 한 사람을 선택하여 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자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전자의 전형적인 예로는 흔히 석가모니 부처가 선택한 가섭 존자가 손꼽힌다.
후자의 경우는 반야다라 존자가 달마에게 전법한 것을 전형으로 삼는다.
물론 달마의 전법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니다.
어쩌면 달마의 전법은 제자를 찾아 수만리 길을 떠난 사례의 극치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달마는 한 사람의 법제자에게 하나(一)의 진법을 전하기 위해 육신의 생명조차 내던지다시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 제자는 달마가 참스승인 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시해 버리고 박대했다.
달마는 그것이 못내 아쉽고 안타까웠다.
그러나 때가 이르지 않은 것을 어쩔 수는 없었다.
달마는 그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곳 화룡동굴이 바로 그 제자와 다시 만날 장소라고 굳게 믿었다.
달마는 더 이상 산야에 깔리는 어둠의 광경을 관상하고 싶지 않았다.
깊은 한숨을 내뱉으면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좌선하던 돌바닥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았다.
눈의 망막엔 그가 점찍었던 제자와 처음으로 만났던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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