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견왕의 참회(2)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
“제가 큰 죄를 지었습니다. 천학비재한 몸으로 욕되게 왕위를 계승하고 삿된 것을 좇아 바른 것을 내치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존경하는 대조사이신 숙부조차도 잊고 있었으니 이보다 죄가 더 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청컨대 스님께서는 이 불경스런 죄인을 용서해 달라고 왕숙께 말씀드려 주십시오. 그리고 지금 어느 곳에 계신지, 당장 왕숙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대왕의 청을 받아들이지요. 이것도 다 인연이 아닙니까.”
바라제가 말을 마치자 한 줄기 바람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구름이 일고 안개가 피어 올랐다.
그 속으로 바라제는 몸을 날려 표표히 사라졌다.
도견왕은 무엇에 홀린 듯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바라제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예를 올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도견왕은 정신을 가다듬어 칠흑같이 어두운 사방을 돌아보았다.
밤의 고요함이 몸속으로 스며들어 마음까지 숙연해졌다. 거듭 반성하는 속내가 그의 등줄기 구석구석에서 땀방울로 흘러내렸다.
바라제는 청봉산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때마침 보리달마는 여러 제자들과 함께 예불을 끝마친 상태였다.
바라제는 기쁜 얼굴로 보고했다.
“도견왕이 사신을 보내서 성조(聖祖)를 모셔가기로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보리달마는 흐뭇해하면서 치하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도견왕이 비속한 인간이 아닌 것은 누구보다도 보리달마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연있는 사람을 만나 심요(心要)의 강설을 들으면 다시 삼보(三寶)를 숭배하고 불교를 빛내는 길에 들어서리라고 확신했었다.
보리달마가 바라제와 함께 뭇 제자들에 둘러싸여 이야기를 나누려고 할 때 멀리 산 아래서 음악을 연주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바라제가 말했다.
“벌써 사신들이 당도한 것 같습니다. 조사께서는 준비를 서두르시지요.”
보리달마는 제자들이 말하는 대로 따르기로 했다.
자신이 절을 비운 동안의 모든 일을 바라제에게 맡기며 꼭 해야 할 일을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보리달마는 사신들의 안내를 받으며 왕궁을 향해 떠났다.
도견왕은 왕궁 10리 밖까지 향을 피워 보리달마를 영접했다.
도견왕은 새삼스럽게 숙부인 대조사의 얼굴을 우러러보았다.
보리달마의 얼굴은 밝게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표정은 장엄했고 걸음걸이는 느린 듯싶었으나 장중했다.
온 몸에선 성스런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도견왕은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숙부는 진정한 활불(活佛)이시구나!’
도견왕은 땅에 꿇어 엎드려 눈물을 흩뿌렸다.
자기의 잘못을 빌면서 숙부께 참회의 기도를 올릴 것을 다짐했다.
보리달마는 두 손으로 도견왕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담담히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조카는 진심으로 참회하시오?”
“제가 어찌 실없는 소리를 감히 겉치레로 할 수 있겠습니까?”
도견왕은 몸을 굽혀 절하면서 대답했다.
“그럼, 좋소이다!”
보리달마는 웃음을 거두고 정색을 하며 말했다.
“일찍이 부처님이 한 비구(比丘)에게 이렇게 말한 일이 있습니다. ‘스스로, 나의 법대로 참회하는 자는 곧 많은 보탬을 얻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계율을 범한 사람이 참회하는 길을 제시해 준 것입니다.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려면 우선 그 마음을 깨끗이 하고 생각을 거두어 고요히 해야 하며,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엄숙하고도 공손한 태도를 보여야 함은 물론이고 안으로 참회하는 마음이 가득하고 밖으로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드러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보리심을 발하여 일체 중생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이 모두 해탈하도록 서원하는 그런 마음가짐이 있어야 합니다. 이밖에 여법(如法)해야 함은 물론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고 잘못을 고백하며 중생에게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죄업이 사라지고 과거의 잘못이 녹아 없어져서 심령이 정화되는 목적을 이룰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훈계를 듣는 순간 도견왕은 전날 밤 쫓아버린 종승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를 모욕하며 내친 것이 못내 마음 아팠다.
자기도 모르게 참회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는 보리달마에게 말했다.
“숙부님의 훈계를 어리석은 조카는 삼가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 제가 깊은 참회와 함께 또 한 가지 용서를 빌 일이 있습니다. 숙부께서도 짐작하시겠지만 종승 대사를 내쫓은 일이 있는데 그 대사를 불러 와서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숙부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보리달마는 엷은 웃음을 입가에 보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견왕은 즉시 신하들을 불러 명령을 내렸다.
“그대들은 속히 총림(叢林)으로 가서 종승 대사를 찾아 모셔와라.”
이때 신하 한 사람이 꿇어 엎드려 아뢰었다.
“삼가 아뢰옵니다. 신이 듣건대 종승 대사는 왕궁에서 쫓겨난 뒤 절벽에서 투신하여 이미 죽었다고 합니다.”
“악!”
그 소리를 들은 도견왕은 마치 벼락을 맞은 듯 비명을 질렀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그 죄값을 무엇으로 치러야 한단 말인가.
그는 황급하게 보리달마에게 자문을 구했다.
“종승 대사의 죽음은 모두 저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저의 이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을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보리달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조카는 너무 놀라지 마시오. 소문은 종승이 죽은 것으로 나 있지만 내가 짐작하건대 그는 아직 죽지 않았소이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산 속의 암자에서 쉬고 있는 것이 분명하오. 지금이라도 사람을 보내서 확인해 보도록 하시오. 그리고 그를 불러 오는 것은 별 문제 없을 것이오. 왕명에 따라 곧 올 것으로 믿소이다.”
도견왕은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
보리달마를 궁성 안 후궁으로 안내하여 조용히 쉬도록 모셨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속히 종승을 찾아오라고 명했다.
비록 대조사의 말씀이긴 했지만 신하들은 당혹스러웠다.
종승은 과연 살았는가, 죽었는가? 살아 있다면 지금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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