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답보(虛空踏步)
말 그대로 허공에서 마치 계단을 걸어 올라가듯이 또는 내려 오듯이 움직이는 경공.
허공섭물(虛空攝物)
내공을 이용해 손을 안대고 물건을 취하는 걸 말함. 능공섭물(綾空攝物), 격공섭물(隔空攝物)이라고도 한다.
현문(玄門)
도교를 다르게 부르는 말.
현철(玄鐵)
그 경도가 대단하여 그 어떤 것으로도 자르거나 부수기 힘든 상상 속의 철. 보검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된다.
혜광심어(慧光心語)
전음술 중 불문의 최고 수법. 아무런 외적인 움직임이 없이 뜻이 움직이는 대로 의사를 전달할 수있으며
그 거리에도 제한이 없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텔레파시와 같은 것이다. 다만 이를 시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일갑자 이상의 공력이 있어야 하므로 무림에서는 거의 실전된 수법이다.
혜능(慧能)
달마대사만큼이나 유명한 인물이었던 육조 혜능(637-713)은 선종의 법통을 단순히 이어받는 데 그치지않고
나름대로의 혁신을 주장했다. 그는 중국 선종의 진정한 창립자로 불리운다. 그와 그에게 수행하던자들에
이르러서야 중국불교는 인도적인 것에서 벗어나 중국의 성격에 맞도록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부친은 본관이 범양인데 좌천되어 영남의 신주로 옮겨 살았다. 혜능은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며 땔나무를 팔아 연명하던 가난한 나뭇꾼 소년이었다.
어느날 한 손님이 '금강경'을 읽는 것을 보고 문득 마음이 밝아져 그 손님께 물었다.
"어느 곳에서 오셨기에 이 경전을 가지고 읽습니까?"
손님이 말하기를,
"나는 기주 황매현 동빙무산에서 오조 홍인대사님을 예배하였는데 그곳의 문하생이 천 명이 넘는다.
나는 그곳에서 오조대사께서 승려와 속인들에게 이 '금강경' 한 권만 지니고 읽으면
곧 부처를 이루게 된다는 말씀을 들었다."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혜능은 곧 어머니를 하직하고 황매의 빙무산으로 가서 오조 홍인대사를 예배하였다.
홍인대사께서 혜능에게 묻기를,
"너는 어느 곳 사람인데 이 산까지 와서 나를 예배하느냐? 또 내게서 새삼스레 구하려는게 무엇이냐?"
혜능 왈, "제자는 영남사람인데 지금 큰 스님을 예배하는 것은 오직 부처되는 법을 구할 뿐입니다."
"너는 영남사람이오, 오랑캐인데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단 말이냐?"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으나 부처의 성품은 남북이 없습니다.
오랑캐의 몸은 스님과 같지 않사오나 부처의 성품에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
홍인은 더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좌우에 사람들이 둘러 서 있는 것을 보고
더 말하지 않고 그를 내보내어 대중을 따라 일하게 하였다.
그때부터 혜능은 한 행자승이 이끄는대로 방앗간에 가서 여덟 달동안 방아를 찧었다.
하루는 홍인이 문하생들을 다 불러 말했다.
"너희들은 각기 반야의 지혜를 써서 계송 한 수씩을 지어 나에게 가져오거라.
내가 너희들의 계송을 보고 만약 큰 뜻을 깨친 자가 있으면 그에게 가사와 법을 부촉하여 육대조사가 되게 하리라."
사람들은 물러나와 의논했다.
"신수화상은 우리들 중의 대사형이므로 굳이 우리들이 계송을 지어 큰 스님에게 바칠 필요가 없다.
신수가 법을 얻은 후에 육조가 되면 되지 않겠는가?"
신수는 혜능보다 먼저 오조 홍인의 문하로 들어와 박학다식하기로 유명한 사람으로 혜능에게는
대선배라 할 수 있다. 신수는 이것을 알고 심한 부담감을 느껴 번민을 하다가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삼경에 남쪽의 복도에 몰래 계송을 적었다.
"신시보리수, 몸은 보리의 나무요, 심여명경대, 마음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와 같나니
시시근불식,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막사유진애. 티끌과 먼지 묻지 않게 하라"
오조 홍인이 아침에 그것을 보고 신수가 쓴 것임을 즉각 알아보고 신수에게 말했다.
"네가 지은 이 계송은 소견은 당도했으나 다만 문앞에 이르렀을 뿐 아직 문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범부들이 이 계송에 의지하여 수행을 하면 비록 타락하지는 않겠으나 진리는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너는 며칠 동안 더 생각하여 다시 한 계송을 지어 나에게 보여라."
신수는 돌아가 며칠을 지냈으나 계송을 짓지 못했다.
한 동자가 방앗간 옆을 지나면서 이 계송을 외고 있었는데 그때 우연히 혜능이 그것을 들었다.
혜능은 한 번만 듣고도 단번에 이 계송이 큰 뜻을 알지 못한 것임을 알았다.
혜능은 본래 글을 쓰지 못하는지라 그 동자에게 부탁하여 자신이 읊는 계송을 복도에 쓰게 했다.
"보리본무수,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명경역무대.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 없네.
불성상청정, 부처의 성품은 항상 깨끗하거니, 하처유진애.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가 있으리오."
그리고 또 하나의 계송을 읊었다.
"심시보리수, 마음은 보리의 나무요, 신위명경대. 몸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와 같나니
명경본청정, 밝은 거울은 본래 깨끗하거니 하처염진애. 어느 곳이 티끌과 먼지에 물들리오."
오조 홍인대사는 이 계송을 보고 즉각 그가 큰 뜻을 알았다는 것을 알았으나
여러 사람들이 그를 시기할까 두려워 밤에 몰래 그를 불렀다.
그는 혜능을 조사당으로 불러 '금강경'을 강론해 주었다.
혜능은 한 번 듣고 모두 깨우쳐 그날밤으로 법을 전수받았으나 사람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홍인은 그에게 의발을 전수하며 말했다.
"너는 이제 육대조사가 되었으니 가사로서 신표를 삼을 것로되,
법은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하여 마땅히 스스로 깨우치도록 해라.
옛부터 법을 전함에 있어 목숨은 실날에 매달린 것과 같다.
만약 이곳에 머물면 사람들이 너를 해칠 것이니 너는 즉시 길을 떠나도록 해라."
혜능은 가사와 법을 받고 밤중에 남쪽으로 떠났다.
두 달가량 되어서 대유령에 이르렀는데 그때 가사와 법을 빼앗으려고
그의 뒤를 추적하던 진혜명이란 승려에게 붙잡혔다.
하나 진혜명은 오히려 혜능의 설법에 감화되어 그의 명에 따라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해 북쪽으로 갔다.
이후 혜능은 남쪽지방을 순례하며 불법을 전파했고,
소주 동남쪽 삼십오리 떨어진 조계산에 머물러 수행법의 혁신을 주장했다.
또 신수는 형남 당양현 옥천사에 머물러 혜능과는 다른 정통을 고수하기를 주장하는 자기의 사상을 전파했다.
혜능이 남쪽, 신수가 북쪽에 있기 때문에 이들을 각기 남종과 북종이라고 불렀다.
(다음 장으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