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해유익 사전

武俠 用語 大事典 (무협 용어 대사전) 16장

백미 운정 2009. 10. 19. 22:39

현재 전해지고 있는 또 하나의 놀라운 소림권법 중 심의권이 있다. 심의권은 청나라 건륭제때 가숙망이란

  사람이 소림사에서 배운 것을 정리하여 만든 것으로 현재 전해지는 것은 가숙망의 7대손인 가소선이 소장하고

  있던 권보를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심의권의 기법은 내용이 풍부하고 다양하며 실용적인 가치가 있다고 한다.  
  심의권의 기법은 다음과 같다.  
  - 황룡출수, 금강도대, 야마분종, 고탐마, 십자수, 사단편, 사형, 우칠성, 좌우비각, 이기각.
  이 외에도 현재 전해지고 있는 소림의 권법들은 다음과 같다.  
  - 육합권, 매화권, 관동권, 대홍권, 소홍권, 노홍권, 포권, 조양권, 통배권, 칠성권, 나한권, 장추권, 금강권,

    흑호권, 유권, 후권, 소림연환권, 호신유성권, 청룡출해권, 오형팔법권, 구권, 영춘권.  

  다음은 무협소설에 많이 등장하는 소림의 권법에 대해서 적어보도록 하겠다.  
  - 권 : 나한권, 백보신권, 용왕유권, 용화권, 백련신권, 아라한신권,  
  - 수 : 소금강산수, 관음청강수, 대금룡산수, 십이금룡수, 소림삼절수, 일노박룡수, 반선수, 철심수, 광한수,  
  - 인 : 보리옥룡인, 구련조화인, 사자모니인,  
  - 장 : 수미불면장, 나한십팔장, 팔십일복마장법, 쇄비장, 항마십삼장, 대력금강장, 혼원장공. 

(4) 기타의 무공.  
  - 지 : 광한지, 일지선공, 미공십팔류, 금강신지, 비류지흔, 달마지, 탄지신통.  
  - 금나 : 미륵삼천해, 금룡십이해.  
  - 각 : 항마연환신퇴, 관음십팔족, 무상각.  
  - 경신법 : 능공천상제, 대나이신법, 초연물외신법, 금강부동신법, 연대구품, 일위도강, 불영선하보.  
  - 장 : 항마복호장, 대윤회겁륜장, 금강장, 십팔로항마장법.  
  - 기타 : 백팔로탕마산, 대원도법, 달마십삼검, 불주연사(암기수법), 봉혈폐맥, 옥금강, 고심종,

             천시지청대법,  천리통, 혜광심어. 
  엄영춘: 영춘권을 만든 여성. 영춘권은 일거일동에 빈틈이 없고 자신의  권내를 침범하는 자는 예민한

             반사신경과 탄력을 사용하여 최소의 움직임으로 타도한다고 하는 강한 권법이다.
             반드시 목인상을 두고 좁은 간격에서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연습을 하며  방수, 탄수, 복수의 삼수로

             그 유명한 채이불권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한다. 
  진형공: 진형공은 채이불권의 창시자이다. 그는 광동성  신회현 사람으로 어릴때부터 천부적인 재질을 발휘하여

             17세때 최초의 스승인 같은 고향의 숙부 진원호에게 오의를 전부 전해받은 다음 그의 소개로 이우산

             (정확히는  모르지만 다리를 엄청나게 잘 쓰는 고수였다고 함)에게 배웠는데 여기서도 겨우 4년만에

             모든 것을 체득하고 다시  이우산의 소개장을 가지고 나부산에 은거하는 소림고승 채복선사를 찾아가

             8년동안 권법과 불교 철리를 교육받고 귀향한 후 2년동안 권법을 정리하여 드디어 청나라
             도광16년(1836)에 채이불파를 창시했다. 
  항림: 청나라 도광년간에 소림사에 들어가 깨우침을 얻은 인물. 민국9년(1920)에 도적떼가 천지를 누비자

          소림보위단을 조직하여 소림사 서쪽에서 도적떼를 격퇴시켰으며 <소림활불>이란 칭호를 받았다.

          바로 이 인물의 제자가 금나한 묘흥이고 묘흥의 제자가 소광, 그리고 그의 제자가 바로 현재의

          소림 장문인 덕선이다. 
  현기화상: 명나라때 소림사의 권법을 전한 <권경, 권법비요>의 주인. <권경,권법비요>는 모두 실존하는 것이며 

                현기화상의 절학을 적은 것이라 한다. 현기화상의 권법은 이후 진송천, 장명악, 장공소를 거쳐 

                청나라 건륭제때 <권경>을 직접 쓴 조환두에게로 계승되었다.
  이소룡: 이소룡은 절권도라는 걸 창시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영춘권을 배웠습니다. 절권도는 그 후에

             그가 잡다한 무공을 섭렵한 후 나름대로의 무공을 정립화시킨 것이다. 
  소림 72예: 소림파의 기공법은 인도에서 온 달마대사가 전한 것이라고 하지만, 무공을 보는 한도에서는

             무당공 등의 중국 본래의 것이라고 해도 조금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소림기공에서는 손가락 끝에서 나오는 <기>로 촛불을 끄는 일지선  이라든가, 깊은우물의 수면을

             <기>로 쳐서 물결이 일게하는 백보신권이라는 유명한 단련법이 있는데, 합계가 72가지이므로

             72예라고 불리워진다. 
 # 참고 사항 
   1. 달마대사가 과연 소림에서 면벽 구년을 했는가, 그리고 그동안에 <역근경>과 <세수경>을 만든 것이 사실인가.

   이 점에 대해서는 후세의 사가들 간에도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일단 달마대사가 527년에 중국으로 와서 536년에

   사망을 했다는게 중론입니다. 물론 게중에는 528년에 죽었다는 설도 있지만 거의는 전자의  의견을

   지지하는 편입니다.  따라서 536년에 죽었다면 527년부터 536년까지의 9년간 인간의 깨달음의 벽,

   즉 깨우침을 전했다는  말이 성립되지요.

   물론 이 기간동안 내내 동굴속에 쳐박혀 면벽을 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지만
   일단 소림에 9년동안 머무르면서 선을 닦았다는 것은 사실인 듯 합니다. 하지만 그 9년동안 <역근경>과 <세수경>을

   저술했는지는 여전한 의문입니다.달마대사가 소림 무술을 창시했다는 주장은 오직  <역근경>의 머리말을 쓴

   이정에 의해 뒷받침될 뿐입니다. 이정은 당나라 삼원 사람으로 자는 약사이고, 시호는 경무입니다.

   서사에 능통하고, 벼슬은 형부상서와 서해도 행군대총관 등을 역임했습니다. 후세 사람들이 그의 논병을 수록하여

   <이위공문대> 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달마대사가 전했다는 <역근경>의 서문에 이정의 이름이 기록된 것은

   당나라 정관 2년(서기 628년)의 일입니다. 그 책에는,- 이 책은 달마대사의 유작이며 소림사 권법의 원전이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하지만 <역근경>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800년 이후로,

   현존하는 <역근경>중 가장 오래된 것은 청나라 도광 3년(1827년)에 출판된 것입니다. 게다가 <역근경>은

   송나라의 충신인 악비가 만들었다는 설마저 있어 그 진위를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현재 전해지고 있는 <역근경>과
   <세수경>을 보아도 무술과 그렇게 커다란 관련은 없어 보입니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건강도인법과

   별로 크게 다를게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 전해지고 있는 <역근경>들이 달마대사시대의 것과 똑같다는

   보장은 없습니다만 아뭏든 이런 점으로도 역사적 사실과 무술세계의 전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이 분명합니다. 

 

2. 삼조 승찬  마지막으로 삼조 승찬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다른 사람을 다 제쳐두고 승찬에 대해서만 말을 하는 것은 승찬의 인생역정이 남다른데가 있기 때문이다. 

   승찬은 본래 대풍질(문둥병)에 걸려 죽을 고생을 했는데 이조 혜가대사를 찾아가 자기의 성명도 밝히지 않고

   불쑥 말했다고 한다.  "제자는 문둥병을 앓고 있습니다. 대사께서는 저의 죄를 참회케 해 주십시오." 

   "그대는 죄를 가져 오너라. 죄를 참회시켜 주리라."  "죄를 찾아 보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대의 죄는 모두 참회 되었느니라. 그대는 그저 불, 법, 승의 삼보에 의지하여 안주하라." 

   "지금 대사님을 뵈옵고 승보는 알았으나 어떤 것을 불보, 법보라 합니까?" "마음이 부처이며 마음이 법이니라.

   법과 부처는 둘이 아니오, 승보도 또한 그러하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죄의 성품은 마음안에도 밖에도

   중간에도 있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혜가는 그를 매우 기특하게 여거 직접 머리를 깎아주면서  말했다. 

   "너는 나의 보배다. 구슬 찬자를 써서 승찬이라 하라."  그 이듬해에  구족계를 받고 그로부터 문둥병이 나아서

   2년동안 혜가스님을 시봉하였다. 승찬은 평생을 은거하며 지내다가 나중에 나이어린 도신선사를 만나 법을

   깨우쳐 주고 그를 사대조사로  삼았다. 그는 문둥병이 나은 후에도 머리카락이 하나도 나지 않았으므로 당시

   사람들은 그를 '적두찬'이라고 불렀다고 한다.그는 수양제2년 (606년)에 입적했는데 법회하던

   큰 나무밑에서 합장한 채 서서 돌아가셨다고 한다.